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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일지③] 식이장애에서 벗어나기까지 5년 – 천천히 먹는 법을 다시 배운 이야기

by 이슈2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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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먹을 거야.”
하지만 매번 무너졌다.
폭식과 죄책감, 절식과 강박을 반복하는 일상은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니었다.
이 글은 20대 초반, 식이장애를 앓던 내가
다시 천천히, 제시간에, 편안하게 먹는 법을 배워가기까지
5년간의 진짜 회복기를 담은 글이다.


1. ‘먹는 게 무서워’라는 말, 누가 이해할까

나는 23살이었다.
처음엔 그냥 살을 빼고 싶었을 뿐이었다.
운동을 시작했고, 식단을 줄였다.
하루 2끼, 간식 없이 지내는 게 어느 순간
당연한 일이 됐다.

문제는 그게 계속되자
어느 날 갑자기
밤마다 냉장고를 통째로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 햄, 치즈, 식빵, 과자, 시리얼, 남은 국까지
  • 정신없이 먹고, 속이 아프고
  • 울면서 토하려 애쓰고
  • 다음 날 하루 종일 물만 마셨다

그게 매주 반복됐다.
나는 단순히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음식으로 덮고 있는 상태였다.


2. 식이장애라는 단어가 무서웠다

처음엔 ‘폭식증’이라는 단어조차 부정했다.
"나는 그냥 살 때문에 민감한 것뿐이야."
"다이어트를 너무 오래 해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몸무게가 5kg 이상 오르락내리락하고,
생리도 멈췄고,
밥을 앞에 두고 공포감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나는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렸다.

의사는 말했다.

“이건 명백한 섭식장애입니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표현 방식이 그렇게 드러나는 겁니다.”


3. 내가 진짜 바꿔야 했던 건 ‘먹는 법’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엔 식단을 어떻게 바꿔야 회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알게 됐다.

나는 ‘먹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 상담 초기, 내가 배운 것들

  • ‘폭식 충동’은 감정이 넘칠 때 생기는 신호다
  • 음식은 위로도, 처벌도 아니다
  • “먹으면 안 돼”가 아니라 “지금 어떤 감정이지?”라고 질문해야 한다
  • 폭식 후 죄책감이 회복을 막는 가장 큰 벽이라는 사실

그때부터 나는 음식 자체보다
음식과 감정의 관계를 보기 시작했다.


4. 회복을 위한 나만의 식사 루틴 만들기

폭식은 ‘폭풍’처럼 오고 갔지만,
나는 그 사이사이에 작은 섬처럼 안정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 하루 3끼,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처음엔 무조건 ‘정량’을 먹는 걸 목표로 삼지 않았다.
대신 시간에 맞춰 앉아서, 나를 위한 식사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루틴
아침 (8시) 식욕 없어도 따뜻한 국물 + 바나나 정도는 먹기
점심 (12시) 탄수화물 포함, 혼자 먹더라도 식탁에 앉아서
저녁 (6시) 간단한 식사 + 폭식 방지를 위한 예고된 포만감 유지

✅ 식사 규칙 3가지

  1. 식사 중 핸드폰 금지
  2. 음식은 반드시 그릇에 덜어서 먹기
  3. “이걸 먹어도 괜찮다”는 말을 꼭 해주기

이건 치료사가 제안한 것도,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5년간 나 스스로 만들어낸 회복법이었다.


5. 폭식이 왔을 때 나를 지킨 3가지 행동

폭식 충동이 오면, 기록부터 한다

나는 공책에 이렇게 썼다.

  • 지금 내가 뭘 느끼고 있는가? (예: 외로움, 긴장, 분노)
  • 음식이 먹고 싶은가, 감정이 덮이고 싶은가?
  • 이 감정은 어디서 왔는가?

→ 이걸 쓰고 나면, 먹는 행동 전에 내 감정을 분리할 수 있었다.


폭식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기

가장 힘든 건 폭식 후 죄책감이었다.
그게 다시 다음날 절식을 부르고,
절식이 다시 폭식을 불렀다.

그래서 나는 거울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이런 날이야. 내일 다시 돌아가면 돼.”

그 말을 믿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매번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내 편’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 먹지 않기, 영상도 사람도 OK

혼자 먹을 때 폭식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나는 식사 시간에

  • 가족 영상 통화
  • 식사 브이로그
  • 혹은 친구와 영상통화 밥약
    등을 활용했다.

음식 앞에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연결감
나를 지켜줬다.


6. 회복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았다

나는 회복하는 데 5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 다이어트 앱을 지우고
  • 체중계를 치우고
  • 거울을 덜 들여다보고
  • 내 식사를 ‘관리’가 아닌 ‘존중’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가끔 무너진다.
스트레스 받으면 라면을 두 개 끓여 먹기도 하고,
배불러도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걸 죄로 여기지 않는다.


 

천천히 먹는 법을 다시 배웠다는 건
단지 식사를 되찾은 게 아니라
삶의 리듬과 자기 존중감을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음식은 이제 나에게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폭식, 절식, 강박 속에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천천히, 다시 먹는 법을 배우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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