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대부분 갑자기 찾아온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너희가 허둥대지 않게 하고 싶다."
그 말은 나에게 막연했던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부모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면서 겪은
정서적인 혼란과 실제적인 준비 과정,
그리고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성장에 대한 기록이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일은 결코 불길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가족을 위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깊은 사랑의 방식이었다.
목차
-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겠니?” 부모님의 한마디
- 마음보다 현실이 먼저였다
- 장례 준비 체크리스트, 이렇게 시작했다
- 사전 장례 정보는 어디서 얻었나
- 감정과 실무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
-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 마무리: 준비된 이별은 덜 아프다
1.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겠니?” 부모님의 한마디
나는 만 52세,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는 평범한 아들이다.
아버지는 올해로 81세, 어머니는 78세다.
두 분 모두 건강한 편이었고, 정기검진도 빠지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없으면 너희가 허둥대지 않게 하고 싶어.”
나는 당황했다.
그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일상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게 현실이 되어 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마음보다 현실이 먼저였다
부모님이 언젠가 떠날 수 있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장례'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해보니 막막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 어디에 연락해야 하지?
- 장지(묘지)는 마련돼 있을까?
- 사진은 어디서 찾지?
- 형제들과 역할은 어떻게 나누지?
생각보다 장례는 감정보다 현실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미리 파악해두는 건
결코 불길하거나 불효가 아니었다.
3. 장례 준비 체크리스트,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사전 장례 준비 리스트’를 검색했고
아버지와 상의해 아래 항목들을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 실제로 준비한 항목
- 유언장 작성 여부: 아버지가 손으로 작성함 (공증X, 자필로 보관)
- 장지 위치: 가족묘 예정지 확인 완료
- 장례식장 예약 가능 여부: 지역 병원 장례식장 2곳 전화 문의
- 영정사진: 최근 1년 내 사진 파일 정리, 인화 계획
- 부고 전달 방식: 자녀들끼리 연락 담당자 정함
- 상주 역할 분담: 나, 동생, 누나 역할 정리
- 장례비용 대략 추정: 약 400만 원 예상, 통장 별도 확보
정확한 날짜를 모르더라도
'틀'을 미리 정리해두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훨씬 안정되는 걸 느꼈다.
4. 사전 장례 정보는 어디서 얻었나
처음엔 모든 게 막막했지만
정보는 찾는 사람에게 오게 되어 있었다.
내가 참고한 주요 자료들:
- 보건복지부 '웰다잉 가이드북' (PDF 자료)
- 장례문화진흥원 공식 블로그
- 유튜브 ‘묘한이야기’, ‘죽음준비연구소’ 채널
- 로컬 장례지도사 인터뷰 기사
- 카페 '슬기로운 장례생활' 커뮤니티
놀랍게도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을 보며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5. 감정과 실무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
장례 준비를 하다 보면
감정이 휘몰아치는 순간이 있다.
영정 사진을 고르다가
눈물이 핑 돌기도 했고,
아버지가 유언장에 “고생 많았다, 아들아”라고 쓰신 걸 보고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이걸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
진짜 마지막이 왔을 때 형제들이 당황하지 않겠구나.”
장례는 결코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남겨진 가족 모두의 감정, 시간, 돈, 에너지가
동시에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6.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죽음에 대해 말 꺼내는 타이밍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다지 ‘죽음’을 언급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나중에 장례는 어디서 하고 싶으세요?”
그 말에 아버지는 이렇게 답하셨다.
“서울까지는 무리니까, 여긴 좋지. 친구들도 많고.”
그 짧은 대답 하나로
나는 많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죽음을 대화로 나눈다는 건
생각보다 덜 무섭고,
생각보다 더 따뜻한 일이었다.
7. 마무리: 준비된 이별은 덜 아프다
아직 부모님은 살아 계신다.
지금도 두 분은 마당에서 감자를 키우고,
동네 마실을 다니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 그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나는 혼란 속에서도
**“나는 준비했어.”**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조용히 보내드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남은 사랑을 정리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 장례 사전 준비 체크리스트 요약
유언장 | 자필 작성 / 공증 선택 사항 |
장지(묘지) | 위치, 가족 동의 여부 확인 |
장례식장 | 병원 / 민간 장례식장 리스트업 |
상주 역할 | 자녀 간 역할 분담 |
연락망 | 부고 전달 방식 사전 정리 |
영정사진 | 최근 사진 확보, 인화 가능 여부 |
장례비용 | 예상 비용 미리 마련 (통장 구분) |